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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 시민이 만든 변화

by gyulnote 2025. 8. 11.

1987년 6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억눌려 있던 민주주의 열망이 폭발한 순간이었으며, 전국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치 체제를 바꾸어낸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6월 민주항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항쟁의 결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 시민이 만든 변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 시민이 만든 변화

6월 민주항쟁의 배경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여전히 군부 중심의 권위주의 정치 체제 하에 있었습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후 ‘제5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정치적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었고,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뽑는 방식이 아닌 ‘간선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간선제란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대신, 대통령 선거인단이 투표하는 제도로, 집권 세력이 선거 결과를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참여와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시민 분노의 폭발

6월 민주항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게 된 계기는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은 경찰 조사 도중 물고문을 당해 사망했습니다. 정부와 경찰은 처음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황당한 발표를 하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언론과 종교계, 그리고 재야 단체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 분노는 민주화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한 인권 침해를 넘어 권위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전국적인 시위를 촉발시키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전개 과정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수많은 시민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 날은 정부가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리력을 사용해 강경 진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점점 확산되었습니다. 학생, 노동자, 종교인, 주부, 상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전국적인 규모로 항쟁이 이어졌습니다. 6월 18일에는 ‘최루탄 추방의 날’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고, 6월 26일에는 약 100만 명이 참여한 ‘국민평화대행진’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민중의 압력 속에서 군부와 여당은 더 이상 국민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6월 29일, 당시 여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정치적 자유 확대를 약속했습니다.

직선제 개헌과 민주주의의 진전

6·29 선언 이후 헌법이 개정되었고, 1987년 12월 16일에는 개헌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민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가 부활하게 되었으며, 정치적 자유와 권리가 확대되었습니다.

비록 같은 해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이후 정치 제도와 사회 전반에 걸쳐 시민의 참여와 권리 보장이 강화되었고, 6월 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의미

6월 민주항쟁은 단순히 정치 제도를 바꾼 사건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권리를 쟁취한 역사적 사례였습니다. 당시의 항쟁은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의 힘과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투표를 하고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지만, 이는 1987년 6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중요한 밑거름입니다.